이번 포스팅은
사촌지간의 장례식 과정의
무거운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최근에 두세번 병원에 올라갔다오셨는데
3일전 토요일 저녁 7시경 어머니에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까지 집에 오시고나서 친형까지 김포공항 4명 예약합니다.
주말비행기 표값은 2만원대였고
평일 월요일 7만원입니다.
좌석 가격은 11,000원,7000원,4000원,2000원이 있었는데
가장 저렴한 2천원짜리로 좌석을 골랐는데
다음에는 4천원,7천원 좌석에 앉을려고합니다.
예전에 정리했던 옷과가방을 버렸던 기억이 나더니
가방이 안보입니다.
어머니가 놀고있는 가방을 주시더니
속옷,양말,양치도구,잠옷을 챙기라고 합니다.
잠이 안와서 새벽3시까지 스마트폰하다가
쪽잠이라도 잔듯 알람시간에 일어났습니다.
형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서 픽업하고
아침 8시45분 비행기시간을 기다리고있는데
다른 비행기 탑승자가 안와서 계속 안내방송이 끊임없이 들리고
뉴스방송과 언론과 달리 관광객과 외국인들이 꽤 있었습니다.
하필 형이 주민등록증을 안가져왔는데
비행기 티켓과 바이오셀프보딩으로 탑승하는데에 성공합니다.
김포공항에서 지하철까지 가는길 내내
에어컨고장이여서 사우나같은 느낌이고
지하철을 20년만에 타 본 기분입니다.
지하철 이동중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정장 대여할려고 키,몸무게 알려달라고합니다.
흑석역에서 내렸는데
막내 고모(고모부) 연락이 닿아서
같이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중앙대학교병원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는데
작은엄마와 큰딸,막내딸,큰고모(큰고모부)까지 맞이해주셨습니다.
작은엄마네 친가에서 일손을 도와주셨고
장례지도사 여실장님과 팀장님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24살 막내딸이
저희 가족과 껴안다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작은엄마와 첫째 여동생도 같이 울어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술 마시면 분위기 싸해질까봐
미리 뺏다고합니다.
상주역할을하면 많이 배고플거라고해서
육계장을 든든하게 먹고
대여받은 정장을 입고 상주합니다.
큰딸이 갤러리식으로
작은아버지와 함께했던 사진과 생일 축하글을 나무벽에다가 붙였습니다.
10시간동안 교대로 상주하면서 서있다가 의자에 앉고
슬픈 ccm브금을 듣다보니 정신과 몸상태가 쳐진기분이고
국화꽃이 없으면 모아서
다시 화분에 꽂아야되는 일을 합니다.
할머니가 되어서 오신분들이 구스플게 우실때
고개를 뒤로 한채 슬픔의 감정이 왔지만 애써 참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다리가 불편하신 여자목사님과 장로님
권사님과 집사님들과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해주셨는데
480장 '천국에서 만나보자'라는 찬송가가 머리속에서 맴돕니다.
입관시간때 작은아버지의 손을 잡아봤는데 차가웠고
장례지도사 선생님이 양복과 새신까지 잘해주셨습니다.
장례지도사 선생님이
막내딸도 가까이에서 보자고했는데
멀리서 지켜보고싶다고해서 멀리 있었고
아버지는 작은아빠이름을 울부짖으셨고
친척분들이 많이 우셨습니다.
큰딸네 제주열방대학교회에서
대표로 여러 목사님과 장로님까지 찾아와주셨습니다.
저녁 11시가 되었고
데코타일같은 바닥에서 잠을 자야되는데
허리도 아프고,불편하면서도
화장실 물 내리는소리,말하는 소리에 잠이 안들고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다가 사진이나 글을 읽고 다시 잠을 청합니다.
장례식 저녁부터 늦은새벽사이에
술기운에 멱살잡고 싸우고 남탓하거나
재산문제로 싸우는등이 있다는데
잠잠했고
새벽5시부터 화장터로 가는 고인유족들이 있었다고합니다.
새벽 5~6시에 알람소리에 일어나고
멍때리다가 본죽과 육계장라면으로
든든한 아침식사를 합니다.
새벽에 막내딸이 저를 찾더니
장례 비용 처리하고 온 작은어머니가
돈봉투를 쥐어주고 비밀이라면서
절대로 말하면 안된다고합니다.
아침 10시45분에 발인예배를 마치고
버스에 작은아버지 관을 싫고나서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이동했는데
다른 고인유족들이 슬퍼하는모습이 보입니다.
영정사진 모실분들중에 사위,손자,조카가 하는편인데
막내딸이 하고싶다고해서 막내딸이 작은아버지를 모셨습니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식권으로 물냉면을 먹었습니다.
운구하는 시간이 되었고
1시간10분보다 시간이 단축되서
화장터로 들어가는 모습
수골을 직접 갈아주는 모습보고 많이 우셨습니다.
가루가 되었을때
인간은 허무하다는걸 화장터에서 느꼈습니다.
큰딸이 병원생활 한달동안
팔씨름하고 장난도 치고
작은아버지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분위기를 띄웁니다.
장례지도사 실장님이 다른고인분들의 비해
미친말같지만
잔치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흰장갑을 끼고 흰분 뿌릴때 너무 뜨거워서 화상 입을거같은 느낌을 받았고
흰분을 못뿌리는 형은 펑펑 울기만하는데
작은아버지에게 전화를 안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나봅니다.
행여나 막혀서 비행기 놓칠까봐
버스안에서 대여받은 정장 놔두고
옷 갈아입고나서
카카오택시로 김포공항으로 갔는데
3시간동안 멍때리고 폰보다가 저녁식사로 분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친적분들은 다시 장례식장에서 짐 챙기고 헤어졌다고합니다.
to.작은아버지에게
나이31살인데
혼자서 비행기타고 장례식장 갈 자신이없어서
부모님과 형까지 넷이서 비행기 타고 장례식장에 갔다왔어요.
잘 다니고 있던 편의점알바도
사장님이 몇일 쉬고 출근하라는 방법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때려쳤어요.
김포에서 제주비행기때 구름에서 지켜보고 있을까봐
잠깐 작은아버지 생각이나서 결국 참아왔던 눈물이 나왔습니다.
다른친척들은 바쁘게사느라
제주도 투어로 한두번 왔는데
작은아버지는
제주도에 자주 와서 방황하고있을때 말동무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5년동안 병원다니면서 진료도 꾸준히 받으시고 할 수 있는 치료도 받았을텐데
살고 싶어서 본능적으로 간 달라고 했던 말이 마음이 아팠어요.
간 기능이 못해서 배에 복수찰때
투병생활하는데도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상황이였으면 남탓,환경탓하고 있었을거에요.
돌아가시전에
체인스톡 호흡 25분했다고 들었어요.
큰딸,막내딸이 병원에서 한달부터 장례하는동안
저보다 씩씩하고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고해서 좋았어요.
그리고
비타민 잘 챙겨먹고 건강 챙기려고 노력할께요.
살아 있을때 이런말 자주 했었어야하는데
이제와서 말하는건 의미가 없네요.
작은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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